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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시니어 1만8000명 ‘웰다잉’ 준비

지난달 27일 정오, 패서디나 드림교회에는 60~90대 한인 시니어 30여 명이 모였다. 특별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비영리단체 소망소사이어티에서 나온 줄리 박 교육부장과 한미정 강사는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주제로 강연했다.   소망소사이어티는 17년째 한인사회 시니어 단체, 기관, 교회 등을 찾아가 ‘웰다잉(Well-Dying)’ 교육세미나를 열고 있다. 시니어 등이 본인 스스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지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을 챙기자는 취지다.   이날 세미나도 1부 치매 진단과 대처법, 2부 일명 소망유언서로 불리는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Healthcare Directive) 교육으로 진행됐다. 소망유언서 교육에 나선 한미정 강사는 “연명치료 여부를 미리 준비하면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 스스로 준비하지 않을 경우 치매 등 의식이 없을 때 본인 의사와 달리 무의미한 생명연장 등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죽음 대비, 정신건강에 도움   ‘죽음을 미리 준비하자’는 캠페인에 거부감은 없을까.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시니어들은 거부감 대신 경청의 자세를 보였다. 웰다잉, 시니어 스스로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하면 정서적 안정 등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깨달음도 엿보였다.   박경란(75) 시니어는 “나이가 들수록 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고 싶어진다”면서 “동생이 65살 때 뇌경색으로 갑자기 죽었다. 동생은 미리 시신기증 등 죽음을 준비했고, 동생의 뜻대로 시신기증을 보면서 나도 대비해야겠다고 느꼈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렵지만 겁먹지 말고 슬기롭게 대처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문화의 시각에서 시니어는 강한 효심을 바탕으로 노년에도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이로 인해 자녀와 부모가 질병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는 불효처럼 여겨진다. 시니어 대부분 본인의 질병치료나 죽음은 자녀 등 가족이 뒷바라지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하지만 한인 이민사회는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고, 시니어 스스로 생활을 꾸려야 할 때가 많다. 이로 인해 홀로 사는 한인 시니어가 외로움을 호소하고 질병치료와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실제 시니어 한인 연구(Study of Older Korean Americans)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한인 시니어는 이민생활 중 가족 또는 사회와 떨어진 고립을 경험하며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높게 나타났다.   소망소사이어티는 한인 시니어가 처한 현실에 지혜롭게 대응하자고 강조한다. 시니어가 주체적인 자세로 향후 다가올 질병과 죽음을 대비할수록 긍정의 자세 등 정신건강도 챙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인 시니어들이 주축이 된 ‘웰빙, 웰에이징, 웰다잉’ 캠페인 효과는 수치로 증명됐다. 지난 17년 동안 맞이하는 죽음에 공감하고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한 한인 시니어는 2024년 11월 현재 총 1만8000명이나 된다.   특히 이 중 2600명은 시신기증까지 서약했다. 이미 89명은 차세대 의사양성 및 의학발전 위해 UC어바인 의과대학 시신 기증을 완료했다.   “시신기증 사회 기여 보람”   한국은 예로부터 신체는 부모가 내려준 존엄과 긍지로 여겨 시신 기증을 기피했다. 최근 한인 이민 1세대들은 전통 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들은 의학발전 등 사회 공익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시신 기증 실천까지 나섰다.   지난 11월 2일 오렌지카운티 은혜한인교회에서는UC어바인 의과대학과 병원, 소망소사이어티 공동주관으로 ‘시신기증 추모식’이 열렸다. 한인 시니어들이 주도한 웰다잉 사전의료지시서 캠페인은 어느덧 1800명의 자발적 시신기증 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망소사이어티 유분자 이사장은 “웰다잉 캠페인에 공감한 한인 시니어 중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미국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가고 싶다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늘었다”며 “현재 UC어바인 의과대학에 기증된 전체 시신의 약 60%가 한인일 정도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죽음이라는 말조차 입밖에 내길 꺼리던 한인 시니어들이 시신기증까지 나선 동기는 무엇일까. 소망소사이어티와 시신기증 서약자 1792명(남성 40%, 여성 60%)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9%가 ‘미국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서’를 꼽았다. 이어 ‘자녀에게 재정적 부담을 안 주려고’ 8%, ‘장례간소화를 위해’가 5%, ‘가족이 없어서’ 3% 순으로 나타났다.   시신기증 서약이 포함된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한 박준구(90) 시니어는 “시신기증은 초보 의사들에게 해부 연습 기회가 되고, 결국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게 된다”며 “60대 때 내 죽음을 대비하고 늙는 동안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도 무지하게 편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지금은 내 아들과 친구도 시신기증 서약을 했다”며 웃었다. 글·사진=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중앙일보 공동기획 한인사회 시니어 한인 시니어 시니어 한인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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